방송가에 낙인 찍혀 퇴출까지…
“갑자기 잠적한 사람 처럼 됐어요”
연예인들은 흥행에 성공한다면 짧은 시간에도 전국민이 알아볼 정도의 인지도를 쌓고 활동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에 따라 엄청난 인기와 부를 얻을 수 있지만 반대로 활동이 줄어들거나 잘못을 저지르면 인기가 빨리 사라지기도 합니다.
이러한 일을 한 몸에 겪은 연예인이 있습니다. 이 사람도 데뷔 후 빠른 기간에 최고의 인기를 달리다 어느 순간 활동이 뜸해지고 사라져 팬들에게 잊혀져 버렸습니다.
이 사람은 2002년에 데뷔해 솔로 가수로 활동했으며, 좋은 데뷔곡과 그에 맞는 가창력으로 많은 사랑 받으면서 많은 팬을 보유했습니다.
또한 비교적 성공적인 데뷔를 마치고 이어서 발매한 2집 앨범이 대박을 떠트리면서 인기차트 10위권 내에 진입하였고 데뷔 때 보다 더 많은 사랑을 받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최고의 인기를 달리던 이 사람은 가수 활동을 중단하고 사라졌으며, 얼마 있다 나온 연예계 퇴출 소식들 때문에 많은 팬들이 놀랐습니다.
이 사람은 노래 ‘내 삶의 반’, ‘한사람을 사랑했네’로 많은 인기와 팬들을 보유했던 가수 ‘한경일’(본명 박재한)입니다.
한창 인기를 달리던 당시 돌연 잠적하여 연예계에서 퇴출됐던 한경일이 최근 18년만에 밝힌 숨겨진 이야기는 정말 충격적이었습니다.
그는 대박을 터뜨린 노래 ‘내 삶의 반’으로 큰 인기를 끌었고 그 덕분에 MBC ‘놀라운 TV 서프라이즈’, ‘브레인 서바이벌’, SBS ‘한밤의 TV연예’ 등 여러 방송사의 예능 프로그램에 고정으로 출연하며 바쁜 연활동을 이어갔습니다.
하지만 누구보다 활발히 활동을 하던 시기에 그와 소속사 사이에 소식이 끊기는 말도 안 되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언론에는 약속된 음악방송 녹화에도 불참하고 잠적했다는 보도가 연일 나왔고 어느새 그는 스타병에 걸린 사람이 됐습니다.
한경일은 이에대해 “인사도 없이 갑자기 떠나버린 것처럼 됐다”며 “소속사가 마케팅 전략 중 ‘노이즈 마케팅’을 이용했다.”라고 말해 충격을 줬습니다.
또한 그는 “실제로 제가 건강이 안 좋았다. ‘건강이 안 좋은 원인은 소속사가 스케줄을 강행한 것이고, 소속사와 불화가 생긴 한경일이 잠적했다’는 내용으로 이슈화되길 바랐다”고 이야기 하며 당시의 상황을 설명했습니다.
그러나 그가 말한 소속사의 노이즈 마케팅은 실패로 돌아갔고 이러한 사태의 후폭풍은 오로지 한경일이 전부 감수해야만 했습니다.
당시를 떠올리며 그는 “원하던 방향대로 이슈화되지 않고 ‘이름 좀 알렸다고 방송을 펑크 낸 사람’으로 방송가에 찍혔다. 불거지지만 않았을 뿐 방송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오갔던 이야기”라며 당시 방송가에서 그에게 찍힌 낙인에 대해 설명했습니다.
이어 “우리 매니저가 일일이 해명하러 다닐 수도 없다. 대중이 저를 싫어했기 보다 방송에 출연할 수 없게 됐다”고 설명해 주변사람들이 안타까움을 자아냈습니다.
20대라는 어린 나이에 모든 걸 바쳐 가수를 준비하고 데뷔한 그는 가수말고 할 줄 아는게 아무것도 없는 청년이었습니다. 그런 그의 연예계퇴출 이후 삶은 순탄치 못했고 고생의 연속이었습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그는 활동 당시에 당한 부당한 일을 고백해 시청자들이 분노했습니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완전 백수가 됐다. 데뷔했을 때부터 한 푼도 돈을 받지 못했다. 계약서 상에 명시된 만큼도 못 받았다”고 말해 충격을 줬습니다.
당시 대박을 낸 2집 노래 ‘내 삶의 반’을 부르고도 한 푼도 못 받았냐는 질문에 한경일은 “돈을 받아본 적이 없다. (메가 히트곡이) 돈으로 얼마나 환산되고 있는지 몰랐다. 몇 년간 일은 정말 많이 하고 스케줄도 바빴는데 수입은 0원이었다”고 믿기 힘든 말을 털어놓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한경일은 연예계에서 사라진 인물이 됐고 오랜 시간이 흘러 케이블 음악 전문 채널 M.net에서 진행한 ‘슈퍼스타K5(슈스케5)’에 등장해 많은 화제를 몰고 다니기도 했습니다.
또한 그가 가요계에 데뷔했을 때 부른 ‘한사람을 사랑했네’로 JTBC ‘슈가맨’에 출연하며 많은 사람들에게 격려의 박수와 응원을 받았습니다.
현재 한경일은 방송일은 없지만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보컬 학원을 운영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그리고 종종 결혼식 축가를 불러 가수 생활을 이어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마지막으로 한경일은 “한 달에 한 번씩 음원을 발표하지만 수익을 기대하기 어렵다. 그것마저 안 하면 저는 아무도 모르게 묻혀 사는 사람이 될 것 같았다. 그래도 아직까지 가수라는 타이틀을 살고 있어서 기쁘다”라고 의미있는 말을 전했습니다.
또한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기억하고 있는 노래 ‘내 삶의 반’에 대해 “(대중이) 이 노래를 알고 있다는 사실이 삶의 원동력”이라고 덧붙이며 활기찬 모습을 보였습니다.
이를 본 많은 누리꾼들은 “저딴 마케팅하고 한경일이 망한거였네”, “연예인으로 성공해도 순식간에 사라지는구나”, “어이없는 방송 퇴출이네” 등의 다소 분노하는 반응을 보였습니다.
소속사 만행에 가장 큰 피해자 본 사람은 ‘이 사람
“엄청난 액수의 돈은 본 적도 없어요”
최근 이슈가 된 이승기의 소속사 문제나 앞서 언급한 한경일 문제와 비슷한 피해를 겪은 사람이 또 있습니다.
이 사람은 피해 당하 금액의 액수로만 따졌을 때는 앞에 두 사람 보다 훨씬 더 큰 피해를 입었습니다. 이 사람은 바로 가수 ‘김완선’입니다.
10대의 어린 나이에 데뷔한 가수 김완선은 당시 인기가수 인순이의 매니저였던 자신의 이모 한씨를 통해 1983년 인순이의 백댄서로 연예계에 진출했습니다.
그 이후에는 뛰어난 재능과 숨길 수 없는 끼로 1980년대 최고의 가수로 성장했고 전국민이 다 알정도로 많은 사랑을 받았습니다.
그런 그녀는 자신의 매니지먼트 전부를 담당한 자신의 이모 한씨한테 13년간 활동한 수익금을 단 한 푼도 받지 못한 사연이 밝혀져 많은 팬들을 충격에 빠지게 했습니다.
최근 많은 소속사들의 갑질 이슈와 더불어 방송된 채널A ‘행복한 아침’에서는 김완선과 그녀의 이모 한씨의 갈등을 다시 떠오르게 했습니다.
김완선은 1986년 솔로 가수로 데뷔하여 1998년까지 13년간 정산을 단 1원도 받지 못한 것이 밝혀지면서 많은 이들에게 충격을 줬습니다.
김완선은 최고 전성기 시절 각종 음원수익, 행사비, 광고비 등 한 달 평균 10억원, 매년 100억원 이상을 번 것으로 추정되는데, 그녀는 음악만 할줄 알았지 수익금에 대해서는 전혀 몰랐던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이에 대해 김완성은 한 방송에서 “나는 10대 후반에 데뷔해 돈에 대해 잘 몰랐고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에 만족했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는 비로소 성인이 되서 활동에 대한 정산이 잘못된 것을 알았고, 결국 오랜 시간 같이한 이모 한씨와 결별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밝혀진 바에 따르면 그녀가 벌어들인 엄청난 돈은 모두 이모 한씨의 남편이자 김완선 이모부의 빚을 갚고 사업자금으로 쓰여진 것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연예계 관계자인 홍종선 대중문화 전문기자는 “이모도 사계절을 옷 두 벌로 버텼고, 아파도 병원을 안 갔을 만큼 돈을 아꼈다. 돈은 모두 이모부의 사업에 들어갔다”며 “이모부는 사업 실패로 전 재산 14억원을 탕진하고도 빚이 남았다. 김완선의 돈도 모두 이모부의 빚을 갚는 데 쓰였다”고 전했습니다.
한편, 김완선은 이모와 매니지먼트 생활을 결별하고 그녀는 계속해서 승승장구했습니다. 5집 앨범 중 ‘삐에로는 우릴 보고 웃지’가 그야말로 대박을 치면서 솔로 여가수로는 최초로 단일 앨범 100만장이라는 엄청난 판매량을 보여줘 화제가 됐습니다.
그러나 이 시기 이모 한씨가 지병으로 고생하면서 김완선은 인기와는 별개로 돌연 슬럼프에 빠지게 됐습니다.
일부 연예계 관계자들의 말에 따르면 “김완선은 (슬럼프로) 2007년 은퇴설까지 불거졌다. 미국 하와이에 갔는데 이모 생각만 하염없이 났다고 한다”며 이모와 김완선은 금전적 갈등은 있었지만 애증의 관계였다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이를 본 누리꾼들은 “빚 보다 훨씬 많이 벌지 않았나?”, “돈 보다 이모를 잃은게 더 슬펐나보네”, “가족끼리 돈 문제 엮이면 정말 슬프지” 등의 반응을 보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