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은 누구에게나 소중한 것이므로 평소에 잘 관리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러나 불행히도 예상치 못하게 다가오는 사고는 건강에 더 큰 상처와 후유증을 남길 수도 있습니다.
더군다나 예상치 못하게 당한 사고로 인해 청천벽력 같은 시한부 판정까지 받게 된다면 자신뿐만 아니라 주위 가족들까지 감당할 수 없는 정신적 고통을 받게 됩니다.
이러한 사연을 가진 연예인이 있어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고 있습니다. 이 사람은 촬영 스케줄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불의의 사고를 당해 시한부 판정을 받게 돼 주변 가족들은 물론 많은 팬들까지 충격을 받았습니다.
이 사람은 바로 전 코미디언이자 현재 배우로 활동하고 있는 ‘고명환’ 입니다. 고명환은 1972년 생으로 경북 상주에서 태어났으며, 1994년에 KBS대학 개그제에서 금상을 수상하며 코미디계에 자신의 이름을 알렸습니다.
이후 1997년에 MBC 공채 8기 개그맨으로 정신 데뷔하며 많은 코미디 무대에서 관객과 시청자들에게 끊임없는 웃음을 줬으며, MBC 코미디 프로그램의 흥망성쇠를 함께 해온 개그맨으로 유명합니다.
동료 코미디언 ‘문천식’과 호흡을 맞춰 ‘와룡봉추’라는 코너가 대박을 치면서 여러 예능 프로그램에도 자주 출연해 많은 인기를 얻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코미디 무대에서만 한정적인 활약을 한 것이 아니라 배우로 활동하면서 ‘논스톱’, ‘경성스캔들’, ‘로망스’, ‘해신’, ‘두사부일체’ 등 여러 드라마와 영화에서 자신만의 연기를 보여주며 많은 팬들을 사로잡았습니다.
또한 그는 연예계 활동 당시 국내 최대의 인터넷 경매 회사에서 마케팅 팀 대리로 근무하며, 연예인과 회사원 생활을 동시에 한 유일무이한 이력을 갖고 있기도 합니다.
사업과 작가로도 성공한 남자
그런 그가 2010년대에는 방송 보다는 자신의 사업에서 큰 성공을 거두게 됩니다. 고명환은 갑자기 메밀국수 사업에 뛰어들게 됩니다.
어른들의 입맛을 공략하고 점점 더워지는 날씨를 생각해 메밀국수를 골랐고 본인이 가장 자신있게 만들 수 있는 음식이라고 생각해 선택했다고 전했습니다.
하지만 원하는 메뉴는 정했으나 만족할만한 맛을 내지 못하는게 문제였다고 판단한 그는 6개월 간 전국 100여 곳이 넘는 유명 메밀국숫집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맛에 대해 연구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하여 면발, 어머니의 조리법이 담긴 장조림 고명, 매일같이 푹 끓여내는 육수 등 자신만의 비법을 갖추게 되고 지난 영업제한을 받던 시기에도 그의 식당은 큰 타격을 받지 않고 승승장구 했습니다.
이에 대해 고명환은 처음 요식업에 뛰어든 것은 16년 전이라고 밝히며 당시에는 연이어 4번의 사업 실패를 경험했고 수익은 커녕 빚만 4억원이 넘을 정도로 상황이 좋지 않았다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며 온 힘을 다했고 그는 가족들 또한 마지막 도전을 할 수 있게 많은 도움을 줬다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그리하여 그는 연매출 10억원을 자랑하는 메밀국숫집의 어엿한 CEO가 됐으며, 현재 그의 가게는 수년째 입소문이 퍼져 “배달 주문 없이도 매장에서만 하루 1000그릇 이상 판매된다. 주말에는 2000그릇 가까이 된다”고 말해 주변 사람 모두를 놀라게 했습니다.
요식업뿐만 아니라 그는 유명 작가로도 활동하고 있어서 또 한 번 주변을 놀래켰습니다. 그가 현재 집필한 책이 24쇄째 인쇄 중이라고 밝혀 어마어마한 판매량을 짐작케 했으며, 메밀국숫집 매출에 버금가는 수준인 것이 알려지면서 그의 능력에 감탄하며 다들 입을 다물지 못했습니다.
허경환 때문에 사업이 망했다?
지금 고명환의 성공스토리가 있기 전까지 그는 앞서 언급한 것처럼 수 많은 실패를 겪었다고 밝혔습니다.
그가 처음 실패한 사업은 요식업인 감자탕집이었습니다. 그는 “감자탕집은 가게 전체와 종업원까지 인수를 한 거다. 첫 달에는 매우 성공적이어서 ‘쉽네. 내 인생에 돈 걱정은 끝났구나’ 생각했다. 그런데 개업 세 달 만에 주방을 맡았던 중국 분이었던 비자 문제로 돌아가게 됐다. (맛의 비결도) 제대로 못 가르쳐주고. 어깨 너머 배운 걸로 만들었더니 사람들이 다시는 안 오더라. 그렇게 망했다”고 솔직하게 털어놓았습니다.
이후 포장마차, 스낵 사업 등을 연이어 실패하며 힘든 시기를 보냈으며, 가장 많은 자본을 투자하고 야심차게 준비한 닭가슴살 사업도 망해 힘든 사연을 전했습니다.
그가 말하길 “돈을 제일 많이 날린 건 닭가슴살 사업이었다. 그때는 제가 선두주자였다. 만반의 준비를 마쳤는데 내 것만 준비하고 시장조사를 안 한 거다.”며 말을 이어 갔습니다.
또 “출시하기 일주일 전에 허경환의 허닭이 나와버렸다. 내가 먼저 준비한 건 맞는 것 같은데 이미 허닭이 나오자마자 유명해진 거다. 그런데 ‘고명환희 고닭’이 나와버리면 후배의 시장을 선배가 침범한 몰상식한 선배가 되는 거다. 그래서 다 폐기했다”고 당시를 떠올리며 씁쓸한 표정을 지어 보이기도 했습니다.
시한부 판정이 그의 모든 것을 바꿨다
지금의 어엿한 작가, 성공한 사업가로 불리기 이전에 그에게는 엄청난 시련이 다가왔으며, 그 일을 계기로 모든게 변했다고 말했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생사의 고비를 넘나들며 시한부 판정까지 받았기 때문입니다.
고명환은 인생 최대의 위기였던 순간을 차분하게 언급했습니다. 고명환은 “2005년 교통사고가 났다. 당시 의사 선생님이 이틀 안에 죽는다고 할 정도로 심각했다”고 당시를 회상하며 운을 뗐습니다.
이어 그는 “그 정도 죽음 앞에 가보니까 내가 살아온 방식이 잘못됐구나 깨달았다”며 “어떻게 하면 끌려다니며 살지 않을까 책을 읽었다. 그때 다시 태어났고 제2의 인생을 찾았다”고 밝혔습니다.
계속해서 고명환은 “2005년 KBS 드라마 ‘해신’ 촬영 후 (서울로) 오는데, 제 매니저가 잠깐 졸았다”며 “그때 매니저와 2년 넘게 일했는데 조는 걸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그 순간 딱 한 번 졸았던 것”이라고 심각한 상황에 대해 전했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눈을 딱 떴는데 시속 70㎞로 달리는 트럭이 있더라. 내가 탄 차는 시속 190㎞였다”며 “(트럭이) 완전히 제 차를 덮치는 모습이 됐다. 저는 자고 있다가 기절해 서울에서 제일 큰 병원으로 옮겨졌다”고 당시 아찔한 상황을 설명했습니다.
심한 부상을 입은 고명환에게 의료진이 한 말을 떠올리며 “의사 선생님이 오셔서 뇌와 심장 출혈이 심각해 이틀 안에 죽을 수도 있다고 하더라”며 “유언을 남기고 신변 정리를 하라고 말했다. 그때 놀라운 사실을 깨닫게 됐다”고 전했습니다.
당시 병원에 누워있던 그는 “뇌가 보여주는 것만 계속 보게 되더라. 어머니가 연극영화과 가는 것을 반대해 제가 재수를 늦게 시작했다”며 “(재수 공부할 때) 하루에 17시간씩 공부했다. 사고 후 병원에 누워있는데 (뇌가) 그 시절만 반복해서 보여주더라”고 남들이 경험해보지 못한 이야기를 전했습니다.
이어 “내 뇌가 왜 그 모습만 보여줄까 너무 궁금했다. 한참 생각해봤더니 그때가 내가 유일하게 (누군가에게) 끌려다니지 않으며 산 시간이었다”며 “죽음 앞에 가면 알게 되는 것들이 있다. 다행히 지금은 상태가 호전돼 건강하다”고 덧붙였습니다.
당시 시한부 판정을 진단한 의사 조차도 이런 경우는 처음 봤다고 전했으며, 이 때부터 그는 기적적으로 살아난김에 하고 싶은 걸 모두 해봐야겠다고 생각하며 여러 분야에 도전해 성공을 이뤘습니다.
이를 본 누리꾼들은 “예전에 코미디 무대와 드라마에서 많이 봤는데 사업가로도 성공하다니 대단하네요”, “요즘 TV에 안 나오는 이유가 있으셨군요”, “기적적으로 살아났다니 인생 스토리가 영화 한편이네요” 등의 반응을 보였습니다.
한편, 그는 2014년에 배우 임지은과 결혼해 현재까지 잉꼬부부로 잘 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많은 이들의 부러움을 사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