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계 어느 나라에 상관없이 죄를 지었으면 처벌을 받는게 너무 당연한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갖은 수단을 써서 법망을 피해가는 범죄자들 때문에 때로는 믿기 힘든 판결이 나오기도 합니다.
또한 시간이 오래 지나면 공소시효가 끝나고 증거가 불충분해 처벌이 어려운 경우도 생기게 마련입니다.
국내에서는 시간이 오래 지나거나 증거가 불충분해 처벌을 피해간 대표적인 사례들이 친일파가 부정한 방법으로 축척한 재산에 관한 사건들입니다.
올해에도 마찬가지로 정부가 친일파 후손이 소유한 서울 서대문구 홍은동 땅을 국고로 환수하려 했지만 패소하고 말았습니다.
서울고등법원 판결에 따르면 정부가 친일파 이해승의 손자 이우영 그랜드힐튼호텔 회장을 상대로 낸 소유권이전등기 소송 항소심에서 1심과 같이 원고 패소(국고로 환수 불가)로 판결했습니다.
친일파 이해승은 조선 25대 왕 철종의 아버지인 전계대원군의 후손으로 일제시절 국권침탈에 기여한 공을 인정받아 1910년 작위까지 받았습니다.
그후 1912년 ‘종전 한일 관계에 공적이 있다’는 이유로 일제로부터 한국병합 기념장을 받았고, 일제가 패망할 때까지 귀족의 지위와 특권을 누렸으며, 이에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는 2007년 이해승을 친일반민족행위자로 지정했습니다.
이번 소유권이전등기 소송 대상이 된 토지는 친일파 이해승이 소유했던 서울 서대문구 홍은동 위치한 임야 2만7905㎡(약 8,440평)입니다.
정부는 일제로부터 국권침탈이 시작된 1904년에서 1945년 광복 때까지 일제에 협력한 대가로 부정하게 취득한 재산은 국가에 귀속된다는 친일재산귀속법을 기준으로 땅을 환수하려 소송을 냈습니다.
1917년 친일파 이해승이 취득한 이 땅은 원고인 현재 소유자 이우영 회장에게 단독으로 상속되어 소유권이 이전됐으며, 잠시 은행으로 소유가 넘어갔다 다시 이우영 회장이 사들이기도 했습니다.
이에 대한 1심 재판부는 “친일 재산인 것을 모르고 취득하거나, 알았다고 해도 정당한 대가를 지급했다면 유효하게 권리를 보유할 수 있다. 친일재산귀속법이 친일반민족행위자와 친일 재산에 대한 정의 규정을 두고 있는 것 외에 제3자에 대해 아무런 규정도 두고 있지 않는데, 친일반민족행위자의 상속인이라고 해서 제3자의 범위에서 제외될 이유는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이러한 1심 재판에 정부가 항소했지만, 항소심 재판부도 마찬가지로 1심 판단이 정당하다고 보고 항소를 기각했습니다.
2심 재판부는 “이 사건 토지가 분할되기 전 경매에 넘어가 1966년 은행으로 소유권이 넘어간 바 있다. 이 은행은 친일 재산이라는 점을 모른 채 경매에서 금액을 납부하고 소유권을 취득한 것으로 충분히 인정된다. 원고(정부)가 현재의 등기명의인인 피고(이우영)를 상대로 소유권 이전 등기를 구하고 있는데, 이는 앞서 토지 소유권을 취득한 은행의 권리를 해하는 결과가 된다”고 지적했습니다.
결국 이 땅이 중간에 경매에 의해 은행으로 잠시 넘어간 뒤 되산 탓에 환수에 실패했고 정부는 1·2심 모두 패소하고 말았습니다.
“그딴게 어딨어 우리는 70년 넘어도 처벌한다”
앞선 국내 소식과는 다르게 독일은 과거사 바로 세우기에 엄청난 공을 들이고 과거 범죄자들에게 엄한 처벌을 내리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최근에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강제 수용소에서 1만명이 희생 당한 범죄에 가담했던 97세 여성에게 유죄가 선고됐습니다. 이 여성은 당시 1940년대 나치 지휘관의 비서이자 타자수로 근무하면서 반인륜적이고 조직적 희생을 의도적으로 방관했고 또한 지지한 혐의를 받았습니다.
영국 BBC 방송은 현지시간으로 20일 독일 북부지역에 위치한 이체호 법원이 1만505건의 끔직한범죄를 조력하고 5건의 살인 미수를 저지른 혐의 등으로 기소된 97세 여성 이름가르트 푸르히너에게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고 보도했습니다.
독일법에 따르면 독일에서 살인죄와 살인 방조죄는 공소시효의 적용을 받지 않기 때문에 수십년이 지난 지금도 누가 됐건 처벌할 수 있습니다.
집행유예를 선고받은 푸르히너는 지난 1943년부터 1945년까지 폴란드 그단스키 인근의 슈투트호프 수용소에서 나치 친위대 지휘관인 파울 베르너 호페 사령관의 비서이자 타자수로 일했습니다.
그녀는 근무하는 과정에서 끔찍한 범죄에 공모한 것으로 조사돼 이와 같은 혐의를 받고 있습니다. 폴란드의 설치된 슈투르호프 수용소는 1939년 나치 독일에 의해 설립됐습니다.
1945년에 폐쇄될 때까지 6년 동안이나 유대인과 폴란드인 6만명 이상이 집단적으로 희생 당한 제노사이드 현장입니다.
담당 재판부는 푸르히너가 비서로 근무할 당시 수감자 1만505명이 가스실 등에서 반인륜적이고끔찍한 희생을 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고 봤습니다. 또한 그녀가 서류 작업을 맡아 처리하면서 조직적 범죄를 방관 및 의도적으로 지지했다고 판시했습니다.
담당 판사인 도미니크 그로스 판사는 “푸르히너가 일하던 사무실은 처음 수용소에 도착한 수감자가 대기하는 모습이 훤히 보이는 곳에 있었다”며 “그가 근무 중 화장터에서 퍼져나오는 연기를 보지 못했을 리 없다”고 콕 집어 지적했습니다.
반대로 푸르히너의 변호사는 그녀가 수용소에 벌어진 조직적이고 끔찍한 범죄를 알고 있었다는 명백한 증거가 없기 때문에 무죄를 주장했지만, 이는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또한 이날 주목할 점은 푸르히너의 이날 재판이 그가 범행 당시 18세였던 점을 고려해 소년법원에서 열린 것입니다.
그리고 그 동안 나치 조력자 혐의를 받고 있던 푸르히너는 재판에 참석하지 않기 위해 머물렀던 양로원에서 도망가고 “전쟁이 끝난 후에야 끔찍한 범죄 사실을 알게 됐다”고 말하는 등 책임을 부인해왔습니다.
하지만 이번에 재판에 출석하면서 “벌어진 모든 일에 대해 미안하다. 당시에 슈투트호프에 있었던 걸 후회한다”고 처음으로 밝히고 고개를 숙였습니다. 그녀는 이날 재판에서도 혐의를 순순히 시인하며 당시 일에 대해 고개 숙여 사과했습니다.
해당 재판이 끝난 뒤 많은 사람들이 법원의 판결을 지지하는 목소리가 끊임없이 이어졌습니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 대변인은 “이번 판결은 끔찍한 범죄에 대한 책임을 지는 데 너무 늦은 건 없다는 사실을 보여준다”고 높이 평가했습니다.
또한 미국 유대인 단체인 ‘사이먼 비젠탈 센터’에서 활동하며 ‘나치 전범 사냥꾼’으로 이름을 알린 에프레임 주로프도 “소년법원임을 고려할 때 오늘 푸르히너에게 내려진 건 최선의 판결”이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해당 사건의 담당 검사인 맥시 봔젠은 “이제 시간이 많이 흘러 이번 재판이 비슷한 종류의 재판(전범 재판) 중 마지막일 수 있다. 역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다”고 밝히며 사안의 중요성을 언급하기도 했습니다.
과거사 바로잡기에 앞장서는 독일에서는 지난 2011년 법원이 강제수용소에서 일했던 당시 91세 남성 존 뎀야누크에게 직접적 증거가 없는데도 범죄 조력 혐의의 유죄를 인정한 것을 시작으로 관련자들에 대한 유죄 평결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올해 6월에는 독일 작센하우젠 강제수용소에서 경비원으로 근무한 101세 남성도 징역 5년을 명령하기도 했습니다. 강제 수용소에서 근무한 하급 관리직책을 맡았던 이들에게도 책임을 물은 것입니다.
이를 본 누리꾼들은 “우리나라랑 다르네”, “이런 것 보면 좀 부끄럽긴하다”, “미래가 중요한 건 맞는데 과거는 좀 바로세우자” 등의 반응을 보였습니다.